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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살던 곳인데”… 재정착에 어려움 겪는 원주민

[아유경제=김진원 기자] 완화되지 않는 정부의 대출 규제 속에 재개발ㆍ재건축 등 도시정비사업지 원주민들의 고민이 날로 깊어지고 있는 모양새다. 이들은 대부분 영세조합원이나 세입자들로 금전적으로 넉넉지 못해 꽉 막힌 대출 규제는 사실상 치명타라는 게 대부분 전문가의 시각이다. 물론 사회적으로 이들 원주민들을 보호하기 위한 다양한 방안들이 나오고 있지만, 실질적인 효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갈 길이 멀어 보인다.

정부 규제에 기존 주민 재정착 ‘요원’
이주비 대출 규제 완화 요구 ↑

“조합원 대부분이 강남 입성을 위해 대출을 왕창 끼고 들어온 서민들로 세입자와의 계약기간이 곧 끝나 전세보증금을 돌려줘야 하는데 현재의 대출 한도로는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라며 “특히 경제적 여력이 없는 노인 분들의 경우 이주비 대출이 줄면 다른 방법을 찾기 힘든데 정부의 일률적인 정책으로 투기와는 상관없이 오랫동안 살아온 분들에게 피해를 입히게 됐다”

서울의 한 재건축 단지 조합원의 볼멘소리다. 일정한 소득이 없는 등 형편이 어려운 영세 조합원들이 현금청산자로 내몰려 결국 삶의 터전을 잃을 수 있다는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한마디로 둥지내몰림, 즉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이 우려되는 실정이다. 젠트리피케이션이란 1964년 영국의 사회학자 루스 글래스(R.Glass)가 처음 사용한 용어로 사전적으로 ‘구도심이 번성하면서 임대료가 오르고 원주민이 내쫓기는 현상 또는 빈민가가 고급 주택지화 되는 현상’을 말한다.

이러한 배경에는 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 기조가 자리한다. ‘규제’를 통한 부동산시장의 과열과 투기를 막기 위해 정부는 ‘투기 억제ㆍ실수요자 보호ㆍ맞춤형 대책’ 등 3대 원칙을 앞세워 강도 높은 대출 규제를 일관했다. 그동안 전세를 끼고 매입하는 이른바 갭투자와 투기 목적으로 한 임대사업자 대출, 전세대출 등이 악용되는 사례 등을 대표적인 시장 과열의 범인으로 지목한 것.

그러나 재건축 조합원들의 경우 이주를 위해서는 이주비가 필요한데 대출 제한이 여전해 이마저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이주비 대출은 재개발ㆍ재건축 등 정비구역의 철거가 시작될 때 소유자들이 대체 거주지를 찾게 지원하는 방안이기 때문에 상당히 중요하다.

하지만 이주비 대출 시 담보인정비율(LTV) 60%(기본 이주비 30%, 추가 이주비 30%)를 적용받았던 과거와 달리 2017년 8ㆍ2 대책 이후 투기지역과 투기과열지구의 경우 대출 한도가 40%로 크게 줄었다. 특히 강남 4구 등은 주택담보대출을 이미 1건이라도 받았다면 추가 대출이 불가하다. 대출한 이주비로 세입자에게 보증금을 주거나 이주를 할 계획이었던 조합원들에게는 큰 악재다.

이 때문에 규제가 강화된 이후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도시정비사업 이주비 대출 규제 완화를 요구하는 글들이 제법 눈에 보였다. 내용을 살펴보면 경제적 약자인 원주민은 내쫓기고, 지분을 매입한 경제적 강자가 원주민 대신 ‘개발이익’을 차지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특히 대출 규제로 자금조달이 불가능하게 된 원주민 조합원이 이주 또는 분양계약 체결을 거부하거나 사업 참여를 철회하는 경우 사업 지연, 소송, 사업 중단 등으로 조합원이 감당할 수 없는 천문학적인 추가비용이나 매몰비용이 발생하는 엄청난 피해가 예상된다고 하소연하며 규제 완화를 요구했다.

대구광역시 중구 남산동 4-5지구 재건축의 경우가 대표적인 곳으로 꼽힌다. 최근 업계 소식통 등에 따르면 해당 구역은 이주비와 대체 상가 등을 요구하는 세입자들과 조합 측이 첨예한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이곳은 2014년 6월 재건축 조합이 설립된 이후 지난해 하반기 이주가 시작돼 현재 388가구 중 90% 이상이 이곳을 떠났다. 하지만 남아 있는 상가 세입자들 ‘철거민 대책위원회’를 꾸리며 원주민에 대한 대책을 세워달라는 처지다.

반면 재건축 조합은 지원할 이유가 없다며 추후 이주를 거부할 시 세입자를 대상으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하겠다고 맞서고 있어 갈등의 봉합이 쉽지 않은 모양새다.

다행인 점은 도시정비사업 원주민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한 노력은 꾸준히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광주광역시의 경우 올해 1월 도시정비사업 추진 과정에서 충분한 사전협의가 없는 강제 퇴거나 퇴거 과정의 불법행위 근절을 위해 본격적으로 나섰다.

이미 2018년 12월 광주시는 정비구역을 지정하는 사업계획단계부터 건축물 처분 등을 결정하는 협의조정단계, 이주와 철거가 이뤄지는 집행단계까지 각 단계를 수립함과 동시에 해당 자치구에 이를 통보하고 조례 개정을 통해 법제화와 세부 운영기준 마련에 나섰다. 

여기서 정비구역 지정 시 노후도 같은 물리적 요소는 물론 형편이 넉넉지 않은 사회적 약자에 대한 주거권까지 고려하고 사전협의 시점을 앞당기고 구청장을 협의체 구성 주체로 지정해 공정성에 실효성까지 더했다. 또한 이주단계 사업장에 대한 엄격한 모니터링과 상황에 따라서는 감독 공무원을 입회시키도록 방침을 정했다.

도시정비사업 프리미엄에 기존 상가 임차인 못 버텨
임차인 보호 위한 법안 줄이어

다만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의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낙후한 구도심이 도시정비사업 등으로 번성해 중산층 이상의 사람들이 몰리면서 자연스레 주변 지역의 주거비나 부동산 가치. 임대료가 오르고, 이를 감당하지 못하는 해당 지역 본래 거주민이 반강제적으로 해당 지역을 떠나게 되는 경우도 다반사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낙후된 지역의 경우 다른 지역보다 임대료가 저렴할 것이고 자연스레 자영업자나 문화ㆍ예술가 등의 인구 유입이 발생하게 된다. 하지만 낙후된 만큼 정부나 지자체에서는 해당 지역 주변을 재생시키려 하고 이를 위해 막대한 예산이 투입된다.

도시정비사업이 마무리되면 해당 지역은 이전과 달리 새로운 건물ㆍ아파트 등으로 변모하게 되고 재력을 가진 각계각층의 사람들이나 대규모 프랜차이즈 상업자본이 침투하게 된다. 이후 프리미엄이 더해져 임대료, 월세 등이 급격한 상승을 가져오고 기존에 있던 사람들은 이를 재정적인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해당 지역을 이탈하게 되는 식이다. 결국 시간이 흐른 뒤 그곳은 정체성을 상실해 상권쇠퇴 등의 전철을 밟는 경우까지 있다. 정부의 의도대로 도시정비사업을 통해 주거환경이 개선될 수는 있으나 젠트리피케이션을 막기는 쉽지 않아 보이는 이유다.

사실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이 오랜 기간 사회적 문제로 대두됐던 만큼 정치권 역시 지속해서 임차인들을 보호하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

정성호 더불어민주당 의원(국회 기획재정위원장)의 경우 지난해 임차인이 임대료 걱정 없이 장기간 영업할 수 있도록 상생협력상가 조성의 법적 근거를 마련하는 일명 ‘젠트리피케이션(둥지내몰림) 예방법’을 대표발의 한 바 있다.

그동안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젠트리피케이션에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정책 수단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많아 마련된 것으로 해당 법안에는 상생협력상가 조성에 관한 법적 근거 신설과 상가건물 임대인과 임차인 간 상생협약에 대한 행정ㆍ재정 지원 등이 담겼다. 즉, 지역주민들이 지역 활성화와 상호이익 증진을 위해 체결하자는 뜻으로 상생협력상가는 정부 또는 지방자치단체가 상가를 매입해 영세상인 등에 임대하거나, 임대료 인상을 자제하기로 임차인과 협약을 맺은 임대인에게 상가 리모델링비를 지원하는 등 방식으로 활용될 수 있다.

상생협력상가 조성은 상가 인근 지역의 임대료가 가파르게 상승하는 현상을 방지하는 효과가 있어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에 더욱 폭넓게 대응할 수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여기에 상생협약 체결이 폭넓게 이뤄지면 임대료 등을 둘러싼 임대인과 임차인 간 갈등도 줄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정 의원은 “일부 시ㆍ군ㆍ구에서 추진하던 정책을 법제화해 정부와 지자체가 더 효과적이고 종합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도록 나설 수 있게 구상한다”면서 “앞으로도 젠트리피케이션 방지를 위한 입법ㆍ정책 대안 마련에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민주평화당 정동영 의원 역시 지난 5월 상가건물 임차인의 권리를 강화하기 위한 입법을 추진했다.

그는 “자영업자들은 대부분 상가건물의 임차인으로 보증금과 월차임 변동에 많은 영향을 받고 있다”며 “그러나 최근 궁중족발 사태에서 알 수 있듯이 특색 있는 상품 판매를 통해서 해당 상권을 발전시킨 상인들은 치솟는 보증금과 임대료, 계약갱신 요구에 대한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문제를 지적했다.

이어서 그는 “임대인이 정당한 사유 없이는 임차인들의 계약갱신 요구를 거절할 수 없도록 해 임차인들의 쫓겨나지 않을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며 “계약갱신요구권 보장기간 10년을 삭제해 임차인에게 특별한 귀책사유가 없으면 계속해서 갱신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더불어 환산보증금을 폐지함과 동시에 재건축 건물의 우선입주권과 퇴거보상금 지급 제도를 도입해 임대인과 임차인의 권리를 동등하게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업계 “기존 영세자영업자 위한 실질적 대책 필요”
서울시, 젠트리피케이션 피해실태 조사 ‘본격화’

업계의 한 관계자는 “쇠퇴도시를 재활성화하는 과정에서 지역의 기존 주민, 영세 상인들이 삶의 터전에서 내몰리지 않도록 보호해야 한다는 사회적 목소리는 이전에도 계속됐다”면서 “도시재생 활성화에 병행해 지역에서 경제활동을 영위하는 임대인, 임차인 등이 협력적 이해관계를 조성하고, 공존ㆍ상생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귀띔했다.

그러면서 그는 “건물주들만 큰 이익을 거두고 기존의 영세자영업자들은 큰 피해를 보는 모습에서 이를 예방하기 위한 실질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서울시도 젠트리피케이션 현황 조사에 본격적으로 나선 모습이다.

이달 4일 시는 ‘젠트리피케이션 피해실태 조사 및 분석 용역’ 입찰을 공고함과 동시에 사업자 선정에 나섰다. 실태조사는 종로구ㆍ이태원ㆍ망원동ㆍ성동구 등 대표적인 젠트리피케이션 지역의 임대인과 임차인 50명씩, 총 100명을 대상으로 한다.

시는 최근 5년간의 상가 대료 갈등을 중심으로 설문과 면접을 통해 피해 현황을 파악한다는 구상이다. 시는 이 조사를 바탕으로 임대차 분쟁 해결 등 관련 정책에 반영할 방침이다.

관악구의 한 세입자대표는 “정부는 경제적 약자들이 내몰리는 ‘젠트리피케이션’이 없도록 세심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면서 “지역주민이 실질적으로 그 효과를 체감할 수 있게 선별적인 조치가 이뤄지길 바란다”라고 토로했다.

정부의 정책 기조 중 하나인 ‘원주민 재정착’ 방침의 정반대 현상이 벌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는 가운데 이를 타개하기 위한 대책이 나올지 관심이 커지고 있다.

김진원 기자  qkrtpdud.1@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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