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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어지는 ‘철거’에 불안한 주민은 날밤 새운다

   
 ▲ 철거가 이뤄지지 않은 폐가의 모습이 을씨년스럽다. <사진 제공=정훈 기자>

[아유경제=유준상 기자] 최근 재난위험시설 판정을 받고도 갖가지 이유로 철거되지 못하는 공동주택이 늘고 있다. 이에 따라 주민들의 안전도 위협받고 있다. 일상에서의 불편은 감내하더라도 오랜 세월로 인해 하중을 이기지 못해 저층부를 중심으로 콘크리트가 내려앉거나 아파트의 경우 건물이 기울어지는 등 붕괴 위험도 도사리고 있다. 위험시설 판정을 받은 건물의 주민들은 물론 주변 지역 주민들까지 노후한 건물이 붕괴할지도 모른다는 공포감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낡은 건물을 중심으로 전면적인 점검의 필요성이 잇따라 제기되고 있다.

지은 지 30년도 안 돼 ‘금’ 가고 ‘물’ 새고…

광주 아파트 옹벽 붕괴로 논란 再점화… “사후약방문” 비난 ↑

소방방재청이 관리하는 특정관리대상시설 통계 자료(지난해 12월 기준) 등에 따르면 우리나라 공동주택 총 5만2000여 곳 가운데 재난위험시설 기준인 D, E등급 판정을 받은 건물은 총 579곳(D등급 503곳, E등급 76곳)으로 파악됐다. 재난위험시설 D등급은 ‘주요 부재(건축물의 뼈대를 이루는 여러 중요 재료)의 노후화로 인해 구조적 결함 상태가 있어 긴급한 보수 및 보강, 사용 제한 여부가 필요한 상태’를 뜻한다. E등급은 ‘주요 부재에 심각한 노후화 또는 단면 손실이 발생했거나 안전성에 위험이 있는 상태로 즉시 사용 금지와 철거가 요구되는 상태’를 말한다.

현재 서울시에 등재된 재난위험시설 아파트 단지는 총 13개 단지 59개 동이다. 시 관계자 등에 따르면 이들 아파트들은 외벽의 균열 및 누수는 경미한 문제로 여겨질 정도로 노후화 진행이 상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이들 아파트 단지들은 재건축 후 입주를 시작한 이래 평균 28년 만에 재난위험시설로 지정받은 것으로 알려져 부실시공 논란이 확산 중이다. 유관 업계에 따르면 이는 오는 5월 29일 시행 예정인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이하 도정법) 시행령」 개정안에 따라 재건축 연한이 40년에서 30년으로 단축된다고 하더라도 재건축 연한에 이르기 전에 이미 건물의 노후화가 진행돼 주민들의 안전을 위협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정은 지방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9월 11일 전북 익산시는 붕괴 우려가 있는 모현동 A아파트 입주민들에게 아파트가 붕괴할 위험이 있다며 갑작스레 긴급 대피 명령을 내렸다. 이 아파트가 1992년 10월 입주를 시작한 점에 비춰 볼 때 불과 21년 만에 아파트가 붕괴 위험에 노출됐다는 얘기다. 이에 이곳 주민들이 불안이 시달리고 있으며 부실시공 논란이 불거져 나오고 있다. 시는 이곳 시공을 맡은 해당 건설사 관계자 등을 불러 조사할 방침이다.

한쪽에서는 A아파트가 갑작스레 붕괴 소동에 휩싸인 것에 대해 ▲이곳은 시공에 대한 관리ㆍ감독이 현재보다 상대적으로 느슨했던 시절에 지어진 데다 ▲부실한 지자체의 관리ㆍ감독 ▲부족한 정기점검 등이 맞물려 벌어진 일로 분석하고 있다.

또 다른 경우로 지난 5일에는 광주 남구 봉선동 B아파트 인근에 설치된 옹벽이 무너져 토사 1000톤가량이 흘러내렸다. 이 사고로 30여 대의 차량과 아파트 주차장이 콘크리트와 토사 더미에 매몰되는 일이 발생해 옹벽과 직접 맞닿아 있는 102동, 103동 주민 일부가 대피하기도 했다. 옹벽 추가 붕괴 우려가 제기됨에 따라 102동, 103동 주민들은 당분간 체육관 등에서 피난 생활을 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B아파트는 1993년 9월 준공 22년 만에 이 같은 사고가 발생했다. 또한 도로 옹벽의 경우 B등급 판정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부실한 안전진단 기준에 대한 비판이 쇄도하고 있으며 안전진단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한편 해당 구청 안전행정과 관계자는 “향후 안전진단 민간 전문가, 교수 등을 불러 해당 구역 121개소를 대상으로 약 3개월 동안 안전점검을 실시할 계획이다”고 밝혔다. 하지만 한편에서는 이를 놓고 ‘선 사고, 후 대처에 불과한 것’이라며 해당 구청에 보다 근본적인 대책을 세워 달라는 요구가 빗발치고 있는 실정이다.

철거 대상 건거주민의 ‘알박기’, 스스로를 옥죄다

업계 “정비사업 속도 높일 수 있는 방안 강구해야”

주민들의 안전을 위협하는 것은 부실시공 의혹 말고도 더 있다. 기존 거주민들의 이른바 ‘알박기’가 ‘철거 지연’을 부르고 이는 스스로의 안전을 위협하는 부메랑이 돼 돌아오고 있는 형국이다.

서울 서대문구 천연동 C아파트는 재난위험시설로 판정받았음에도 기존 거주민들의 반대가 극심함에 따라 철거에 애를 먹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서대문구청 도시계획팀 관계자는 “C아파트는 2007년 7월 재난위험시설로 판정받았지만 일부 토지등소유자들이 강력하게 이주를 거부하면서 철거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이에 따라 당초 수립한 철거계획도 사실상 무산된 상태”라고 밝혔다.

시내 다른 철거 대상 아파트들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중구청 주택과 관계자는 “1968년 9월 입주를 시작한 회현동 ‘제2시민아파트’의 경우 입주를 시작한 이래 28년 만에 재난위험시설로 지정됐지만 기존 거주민들이 ‘알박기’에 나섬에 따라 해당 아파트 주변 지역의 주민들이 극도로 불안감에 시달리고 있다”고 전했다.

심지어 붕괴 우려로 인해 대피하는 주민들이 발생하는 사례도 우후죽순 전해지고 있다. 이 때문에 노후한 건물 및 시설을 중심으로 지자체가 전면적인 안전진단 및 대책 마련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에 힘이 실리고 있다.

하지만 지자체의 발 빠른 대처는 기대하기 어렵다는 게 유관 업계 관계자들의 다수 의견이다. 업계 관계자 등에 따르면 서울시만 하더라도 현재는 관내 25개 자치구들이 노후 아파트들에 대한 직접적인 관리ㆍ감독을 담당하고 시는 이들의 보고를 받아 총괄적인 관리를 하는 수준으로 안전 관리 시스템이 가동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시민들의 안전을 위협하는 노후ㆍ철거 대상 시설물의 관리ㆍ감독이 제대로 이뤄질 수 없음을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심지어 재난위험시설 DㆍE등급 아파트로 판정받았다고 하더라도 관련 부서 공무원이 D등급은 월 1회, E등급은 월 2회 육안으로 점검하는 수준인 상황은 사태에 심각성을 더한다.

하지만 시는 이 같은 사정을 알고도 현실적인 제약이 많아 방관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서울시 도시안전과 관계자는 “아파트가 개인의 ‘사유재산’이다 보니 관련 조치를 강제할 수 없어 긴급 보수와 같은 임시 조치 외에는 마땅히 할 것이 없다”며 “노후 아파트 문제점에 대해서는 익히 잘 알고 있으나 시가 나설 만한 뚜렷한 방도가 거의 없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재난위험시설로 등재된 아파트에 시가 강제적으로 철거를 명할 수 있는 경우는 천재지변 등 긴급 상황에 한정된다”고 덧붙였다.

이렇게 서울 시내 노후 아파트에 대한 뚜렷한 대책을 세우기 어려운 또 다른 이유로 노후 아파트 대부분이 재개발ㆍ재건축 등 정비사업을 시행 중인 점이 꼽힌다. 현재 서울 지역 재난위험시설로 지정된 13개 아파트 단지 중 재개발ㆍ재건축을 추진 중인 단지는 11군데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됐다.

한 철거업체 전문가는 “정비사업이 진행되면 기본 5년에서 사업이 지연될 시 10년 이상이 걸린다. 사업 진행에 수반되는 갖가지 난제들이 발목을 잡고 있기 때문이다”라며 “이에 따라 정비사업이 이뤄지는 곳들은 재건축 연한이 단축된다고 하더라도 기본적으로 안전을 담보할 수 없는 상태”라고 밝혔다.

이 전문가는 이어 “노후 아파트의 붕괴 위험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서는 사업 주체인 정비사업조합-시공자가 사업 진행 속도를 높일 수 있도록 지자체가 효율적인 방안을 제시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특히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가 전원 합의제로 운영돼 심의 문턱이 높다는 지적이 끊이질 않는 점에 비춰 심의 절차 간소화나 기준 완화 등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 폐기물이 쌓여 있는 빈집은 쓰레기장을 방불케 한다. <사진 제공=정훈 기자>

재개발ㆍ재건축 구역 내 빈집, 범죄 온상 된 지 오래

관리처분인가 전 철거, ‘동의’ 조건 탓에 어려워… 법제 개선 ‘시급’

문제는 기존 노후 건물이 가져오는 생활 불편이나 붕괴 위험이 전부가 아니다. 착공을 앞두고 일부 가구의 이주가 지연되면서 늘어난 빈집이 안전 사각지대로 전락하고 있어서다. 전국적으로 공분을 불러일으킨 ‘김길태 사건’과 ‘김수철 사건’ 등에서 알 수 있듯이 범죄가 일어나는 곳은 우범자들의 주거지 등 생활 반경 내 비교적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지 않는 버려진 폐ㆍ공가다.

특히 대규모 이주를 전제로 하는 재개발ㆍ재건축사업으로 발생하는 ‘공동화’ 현상 탓에 범죄에 악용할 가능성이 높은 폐ㆍ공가 지역에 대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각 지자체별로 해당 지역의 범죄 예방 차원에서 폐ㆍ공가 위치ㆍ개수 조사 등을 하고 있지만 보다 근본적인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게 경찰 및 유관 업계 관계자들의 다수 의견이다.

일례로 대구 중구의 경우 도심 공동화 현상으로 인해 인구가 빠져나가 시내 8개 구ㆍ군 가운데 빈집이 가장 많은 것으로 파악됐다. 시의 폐ㆍ공가 전수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중구의 폐ㆍ공가는 600여 동인 것으로 파악돼 지난해와 비슷한 수치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2013년보다 약 200여 동이 늘어난 수치다. 중구의 재개발이 늦어짐에 따라 생긴 빈집은 청소년들의 탈선 공간이자 우범지대로 변모하고, 도시의 미관과 환경을 해치는 ‘흉물’로 전락했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하지만 정비사업 관계자들에 따르면 중구청을 비롯해 비슷한 상황에 처한 다른 지자체의 경우에도 이에 대한 적절한 조치가 미흡하다고 입을 모은다.

한 정비사업 관계자는 “중구가 폐ㆍ공가에 대한 조사를 하는 것은 범죄 예방 차원이 아닌 단지 다른 용도(주민 쉼터, 주차장)으로 변경하는 데에만 급급해 지역 내 정확한 폐ㆍ공가 개수와 위치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며 “특히 벽이 허물어지고 쓰레기가 많이 쌓여 주민들의 신고가 들어오면 그제야 후속 조치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폐ㆍ공가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지자체로 알려진 인천시의 경우도 막상 업무를 수행하면서 여러 가지 난항에 부딪히고 있다는 전언이다. 인천시에 따르면 시는 시내 범죄 문제를 해결키 위해 시가 일괄적으로 폐ㆍ공가 대책을 마련하고 강행해 왔다. 시는 2013년부터 각 구청에 폐ㆍ공가 개수 조사를 위한 작업을 착수케 하고, 경찰청에 조사된 폐ㆍ공가의 위치를 알려 순찰을 부탁하는 등 적극적으로 치안 유지에 나서고 있지만 도시정비사업이 이뤄지는 지역 내 폐ㆍ공가 문제를 처리해야 하는 경우 사업이 진전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관련 법상 관리처분인가 이후 할 수 있는 철거는 주거환경에 장애가 있는 경우 선(先) 철거가 가능하다. 하지만 사업시행자와 토지등소유자 등의 동의를 얻어야 하기 때문에 어려움이 많다는 전언이다.

인천시 주거환경정책과 관계자는 “시내 폐ㆍ공가 1400여 곳 중 정비사업이 이뤄지는 곳의 폐ㆍ공가 수는 약 1000여 곳에 이르는데 주로 재개발 지역의 폐ㆍ공가를 철거해야 하는 경우 사업시행자나 토지등소유자의 반대에 직면하는 경우가 많아 난항을 거듭해 왔다”고 토로했다.

이 관계자는 현재 진행 중인 폐ㆍ공가 관리 대책과 향후 계획에 대해 “시가 폐ㆍ공가 철거를 단행키 위해 사업시행자와 지속적으로 협의를 한 결과 지난해 사업시행자 측이 160여 곳의 폐ㆍ공가를 자체적으로 철거했다. 또한 각 구마다 일정액의 사업비를 확보해주고 각 구는 건축주의 동의를 얻어 철거를 지속적으로 유도하고 있다”며 “작년부터 진행한 폐ㆍ공가 개수 및 위치 파악도 지속적으로 이뤄지고 있어 빠른 시일 내 전면적인 폐ㆍ공가 철거를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에 한 업계 관계자는 “적극적으로 폐ㆍ공가 문제 처리를 위해 노력하는 인천시의 경우도 정확한 수치 파악하는 데 난항을 겪을 정도로 폐ㆍ공가는 생성 및 소멸 주기가 매우 빠르다”며 “음침한 공간에서 이뤄지는 범죄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지자체 차원에서 지속적인 관심과 노력을 기울여야만 가능할 것이다”고 전했다.

 

 

유준상 기자  Lostem_bas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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