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업계 전문가들은 도시재정비사업이 다시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중앙ㆍ지방정부, 청와대, 국토부 등 모든 정책 당국자들이 머리를 맞대 그간의 시행착오를 성찰하고 비판적으로 분석해 진정성 있는 개정을 추진해야 한다고 주문하고 있다. <사진=아유경제 DB, 편집=박진아 기자>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이하 도시정비법)」이 제정된 지 어느새 14년이 훌쩍 넘었다. 그간 정비사업에 대한 사회적 수요가 급증하고 시장 상황이 급변함에 따라 개정이 수십 차례 이뤄졌던 게 사실이다. 문제는 개정이 끝없이 이뤄지고 있지만 정작 업계의 현실을 잘 반영하지 못하는 졸속 입법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 점이다. 이로 인해 ‘누더기법’이라고 불리기까지 한다. 이에 본보는 가장 최근 개정 절차를 밟고 있는 도시정비법을 중심으로 문제가 무엇인지 분석해보고, 개선ㆍ보완돼야 할 점은 무엇인지 고찰해봤다.

‘일반경쟁입찰’만 허용한 도시정비법 일부 개정안, 지난해 11월 입법 추진
유관 업계 전문가 “‘혹(비리ㆍ부조리)’ 떼려다 ‘더 큰 혹(사업 지연)’ 붙이는 꼴” 일침

앞으로 정비사업에서 수의계약 또는 지명경쟁입찰 방식의 협력 업체 입찰을 보기 힘들게 됐다. 정비사업조합이 발주하는 모든 용역에서 ‘일반경쟁입찰’만 허용하는 내용의 입법이 시작됐기 때문이다.

새누리당 김현아 의원은 지난해 11월 22일 이 같은 내용을 골자로 한 도시정비법 일부 개정안을 대표발의 했다. 개정안에 따르면 ▲정비사업조합(이하 조합)에서 발주하는 모든 용역은 원칙적으로 일반경쟁으로 선정하도록 하고, 예외적으로 금액이 적거나 재난 등 긴급한 경우에만 지명경쟁이나 수의계약을 허용한 게 골자다. 또한 ▲입찰의 투명성을 위해 일정 금액 이상의 용역의 조달청 전자조달시스템 사용 의무화 ▲조합 간 용역비를 비교할 수 있도록 시장ㆍ군수ㆍ구청장이 매년 관리처분인가를 받은 조합에 대한 모든 용역비 정보를 일반에 공개 ▲용역 업체 선정 관련 금품ㆍ향응 제공 행위에 대해 제공자나 수수자가 자수하는 경우 형벌 감면, 신고포상금제도 도입 등 위법행위에 대한 단속 강화 ▲정비사업비가 증가하거나 조합원들이 요청하는 경우 관리처분계획에 대해 지자체 인가 전에 한국감정원이나 한국토지주택공사(LH) 등의 검증을 받도록 함 등이 담겼다.

이는 그동안 지명경쟁입찰 또는 수의계약으로 진행된 협력 업체 입찰 과정에서 조합 임원이 다양한 방법으로 이권에 개입하거나 업체로부터 리베이트를 받는 등 지속적으로 발생한 부조리를 단절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이같이 훌륭한 도입 취지에도 불구하고 업계에서는 그에 따른 후폭풍을 우려하며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투명성 제고에는 도움이 될지 모르나 사업 속도를 늦출 수 있다는 지적이 가장 크다.

한 도시재정비사업 전문가는 “서울시 예산회계규정에도 일정금액 이하의 소규모 용역은 수의계약으로 할 수 있는 조항이 있는데 이사회 및 대의원회를 거쳐야 하는 번거로움과 시간이 지체되는 단점이 있다. 조합 입장에서는 모든 입찰을 일반경쟁입찰 방식으로 진행하게 되면 사업 추진 시간이 지연되는 것은 물론 그마저도 유찰될 경우 사업이 위축될 수 있는 점이 가장 치명적이다”고 평가했다.

그는 이어 “특히 규모가 작거나 자금난에 시달리는 사업지의 경우 협력 업체가 일반경쟁입찰 방식의 참여를 꺼리기 때문에 부정적인 여파가 상당할 듯하다. 투명성 제고에는 도움이 될지 모르나 사업 지연은 불가피해 보인다”고 덧붙였다.

공공지원제도 적용 받아도 ‘조합설립인가 이후’ 시공자 선정토록 법 바뀐다
도시재정비업계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 법률체계 하극상 논란만 자초” 비판

그런가하면 서울시내 정비사업지들이 학수고대하던 바람이 이뤄질 전망이다. 토지등소유자 과반수 동의만 있으면 조합설립인가 후 시공자를 선정할 수 있도록 하는 법적 근거 마련이 추진되고 있기 때문이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박맹우 의원(새누리당ㆍ울산 남구을)은 지난해 12월 이 같은 내용을 담은 도시정비법 일부 개정안을 대표발의 했다.

이에 따르면 시공자 선정 시 ‘토지등소유자(제16조에 따라 조합을 설립한 경우 조합원)의 과반수 동의가 있는 경우’에는 조합설립인가 후 조합원총회에서 국토교통부(이하 국토부) 장관이 정하는 경쟁입찰의 방법으로 건설업자 또는 등록사업자를 시공자로 선정할 수 있게 된다(법 제77조의4제7항 신설).

그동안 공공지원제도의 적용을 받은 서울 시내 조합들은 사업시행인가 이후에나 시공자를 선정할 수밖에 없었고 조합-건설사 공동시행 및 사업대행 시에만 선정 시기를 ‘건축심의 이후’로 앞당길 수 있었다. 이로 인해 자금난에 시달리던 이들에게 출구가 열린 셈이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이번 개정이 ‘적기를 놓친 뒤늦은 입법 추진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부동산시장이 호황기일 때는 아무런 움직임이 없다가 작년 말부터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규제 일변도로 돌아선 뒤에 ‘시공자 선정 시기 조정’ 개정 절차를 밟는 것은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게다가 정부는 이같이 뒤늦게 입법 추진을 함으로써 대한민국 법률체계의 하극상 논란만 자초하고 있는 형국이다. 지자체인 서울시가 조례 개정을 통해 장시간 도시정비법 적용을 피해갈 수 있었던 지난 시간동안, 국토부는 고통 받는 일선 사업지보다 서울시의 눈치를 본 것 아니냐는 결론으로 이어져서다.

한 도시재정비업계 관계자는 “국가의 강제력을 수반하는 사회 규범 중 최상위의 효력을 가진 법이 지자체 조례에 등 떠밀려 국민의 삶의 질적 제고를 이뤄내지 못한다면 더 이상 그 법은 존재 의미가 없다. 그동안 피해를 입은 서울 시내 정비사업지들에게 이 같은 현실은 두고두고 회자가 될 일이다. 정부는 전철을 밟지 않도록 앞으로 유의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도시재정비사업의 분쟁 저감 위한 도시정비법, 파격적이지만… 곳곳에 허점 노출

연 초에는 도시재정비사업의 분쟁을 저감시키기 위한 입법 추진이 시작됐다. 그동안 사업성ㆍ효율성 제고를 위한 개정은 있었지만 이 같이 사업 추진 중 발생하는 분쟁을 해소하기 위한 내용을 구체화한 적은 최초여서 관심이 쏠리고 있다.

지난달(1월) 20일 열린 국회 본회의에서 민홍철 의원, 전재수 의원이 각각 도시정비법 개정안을 대표발의, 국토교통위원장의 대안으로 통과된 데 이어 이달 8일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 황교안 대통령권한대행 국무총리의 재가를 받아 최종 공포됐다. 이 법은 공포 후 1년이 경과한 내년 2월 9일부터 시행된다.

그런데 정비사업을 둘러싼 불필요한 분쟁을 저감시킨다는 이상적인 도입 목적에도 불구하고 이를 접한 유관 업계 관계자들은 우려를 표했다.

먼저 가장 주목할 내용은 정비사업 6개 유형을 3개로 통합한 것이다. 법률을 단순화시키고 체계를 재정비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에 따르면 기존 6가지 유형으로 분류되던 정비사업은 재개발(재개발ㆍ도시환경정비 통합), 재건축(재건축ㆍ가로주택정비 통합), 주거환경개선(주거환경개선ㆍ주거환경관리 통합) 등 3가지 유형으로 간소화됐다.

하지만 도시환경정비의 경우 재개발로 통합될 시 임대주택 공급이 의무화돼 치명상을 입는다. 그동안 도시기능 회복과 상권 활성화를 위해 추진돼온 도시환경정비사업은 임대주택 건립을 하지 않아도 되는 메리트가 있었다. 현재 서울시만 조례로 도시환경정비사업을 임대주택 건립 대상으로 못 박고 있어 나머지 지역의 도시환경정비사업지들은 이번 개정안이 시행될 경우 사업이 위축될 것이란 게 업계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나아가 개정안은 분양신청을 하는 조합원들에게 감정평가 결과를 미리 알려주는 내용도 포함했다. 이에 따르면 해당 구역의 분양신청 공고 전에 종전자산평가 결과와 분양대상자별 분담금 추산액을 알려주고, 분양공고 시기를 사업시행인가 후 120일로 연장하며, 사업시행 변경인가로 세대수ㆍ주택규모가 달라진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재분양신청이 허용된다.

하지만 유관 업계는 이는 결국 현금청산자를 양산시키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라고 우려를 표하고 있다. 분양신청보다 종전감정평가액과 개별분담금을 먼저 통지받게 되면 사업성이 없다고 판단될 시 현금청산자가 속출하는 현상이 발생할 것이란 이야기다.

또한 매도청구를 「집합건물의 소유 및 관리에 관한 법률(이하 집합건물법)」을 준용하지 않고 정비사업의 특성을 반영하여 필요한 절차를 도시정비법에서 직접 규정하게 하는 것도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한국주택문화연구원 위준복 기획2실장은 “매도청구에 따른 보상금 지급을 위해서는 양 측이 받아들일 수 있는 보상 기준이 필요하다. 하지만 집합건물법과 성격이 다른 도시정비법에서 이 같은 기준을 명확하게 제시하게 한다는 발상 자체가 모순이다. 시가(時價) 보상 여부에 대한 기준이 불분명해 보상금 수위를 놓고 조합과 매도청구를 당하는 토지등소유자 간 충돌이 예상된다”고 평가했다.

또 조합장이 대의원회의 의장이 되는 경우 조합장에게 대의원 권한을 부여하게 하는 내용도 논란을 부르고 있다. 그동안은 필요와 상황에 따라 조합 정관으로 조합장에게 대의원 자격을 부여할 수 있었지만 이를 법 개정을 통해 일반화할 경우 의장으로서의 ‘공정성’을 기할 수 없는 결과를 나을 수 있다는 지적이 크다. 특히 대의원 내 특정 세력에게 편중된 회의 진행과 그들의 이권을 위한 활동을 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게 다수 유관 업계 관계자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일시적인 포퓰리즘적 입법 추진이 도시정비법을 누더기법으로 만든 원인
업계 “열악한 실태를 고려한 진정성 있는 추가적인 법제 마련 절실”

위와 같이 최근 개정 절차를 밟고 있는 도시정비법의 내용을 살펴보면, 이들 법안의 공통점으로 개정안의 입법 취지는 이상적이지만 도입 후 예상되는 후폭풍이 매우 크다. 아울러 한 번 만들어진 후에는 그에 따른 후속 대책을 다시 마련하기가 까다롭다.

이에 대해 업계 전문가들은 문제점이 반복해서 발생하는 근본적인 원인은 1차적으로 정부 당국자들에게 있다고 입을 모은다. 법제 개선 추진의 권한을 가진 정부 당국자들이 이권과 당리당략, 표심을 얻기 위한 포퓰리즘적 입법 추진을 해왔기 때문이라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한 업계 전문가는 “협력 업체 입찰, 시공자 선정, 구성원 간 분쟁 해소 등 일선 현장의 큼직큼직한 문제 현안들을 개선하려는 시도는 좋다. 문제는 거기서 끝이라는 점이다. 표심이나 여러 가지 이권 추구를 위해 도시재정비업계의 현안을 담은 개정 추진을 내세우지만 입법 과정 중 예상되는 문제점을 보완하고 법안을 다듬어가는 작업에 소홀한 모습에 실망감을 감출 수가 없다. 이는 곧 도시정비법이 개정을 통해 줄곧 ‘성형수술’을 거듭하고 있지만 누더기법으로 전락하게 된 근본적인 원인”이라고 꼬집었다.

이 같은 맥락에서 입법자들이 때에 따라 편승한 포퓰리즘 법 개정을 내려놓고 문제가 수두룩하게 쌓여있는 도시재정비업계의 열악한 실태를 반영한 법 개정을 진정성 있게 추진해야 한다는 주문이 높아지고 있다. 이와 관련해 업계에 따르면 ▲사업이 거의 멈춰있다시피 한 강북 재개발ㆍ재건축현장 실태조사를 통한 공공지원 확대 ▲사업이 지연됨으로 금융비용 부담으로 사업성이 확연히 떨어진 사업지의 용적률 개선 및 임대주택 축소 등 사업 지원 ▲정비사업 임대주택 표준건축비 개선으로 모든 사업지의 사업성 개선 등 다수 사안의 법 개정이 시급하다.

한국주택문화연구원 노우창 기획1실장은 “특히 임대주택 표준건축비의 경우 2008년 이후 10년 가까이 동결되고 있어 정비사업 수익성 약화 요인으로 지적받아 왔다”며 “표준건축비 인상 여부 및 시기가 불투명하다보니 지난해부터 도시재정비사업 조합들이 소형주택과 임대주택 계약 체결을 지연시키고 있다. 실공사비까지는 아니더라도 물가상승률을 반영해 표준건축비를 상승시키는 게 현실적이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도시재정비사업이 다시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중앙ㆍ지방정부, 청와대, 국토부 등 모든 정책 당국자들의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재개발ㆍ재건축 등 정비사업은 떼돈을 버는 사업이 아니다. 입법자들은 그간의 시행착오를 성찰하고 비판적으로 분석해 질적ㆍ양적으로 개선된 개정안을 만들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

유준상 기자  Lostem_bas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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