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시가 압구정 아파트지구에 이어 지구단위계획 대상지로 반포ㆍ서초ㆍ여의도 아파트지구를 지정했다. 사업 지연 등 지구단위계획의 부정적 영향의 방향키는 ‘각 사업 진행 단계’에 달려있어 해당 지구 재건축사업 전선은 혼란을 빚고 있는 모양새다. 일각에서는 시의 이번 조치가 대규모 지구를 묶어 사업을 추진했다 무너진 뉴타운사업과 같은 전철을 밟을 것이란 주장이 제기되고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사진=아유경제 DB, 편집=박진아 기자>

최근 서울 지역 ‘핫플레이스’로 꼽히는 재건축 사업장들이 들썩이고 있다. ‘압구정’에 이어 ‘반포ㆍ서초ㆍ여의도’까지 서울시의 지구단위계획 대상에 올랐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한 도시재정비업계 전문가는 “압구정을 비롯해 지구단위계획 수립 대상인 곳들은 모두 재건축사업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어 서울시가 압구정 지구단위계획을 수립한다고 발표했을 당시만 해도 찬반 논란이 들끓었던 만큼 이번에도 비슷한 반응이 쏟아지고 있다”면서 “일각에선 ‘뉴타운(재정비촉진지구)’처럼 실패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의견이 나와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고 말했다.

市, 잘 나가는 아파트지구마다 ‘재건축 가이드라인’ 그어

그의 말처럼 서울시는 반포ㆍ서초ㆍ여의도 아파트지구를 지구단위계획 수립 대상지에 포함시켰다. 각 단지별 계획보다 큰 틀에서 통합적인 지구단위계획이 필요한 시점이란 게 시의 판단이다.

지난 19일 시는 반포(264만9071.5㎡), 서초(149만1261㎡), 여의도(55만734.4㎡) 아파트지구의 기존 단지별 계획(개발기본정비계획)을 주거지 및 교통, 기반시설, 상업지역 등을 종합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지구단위계획으로 전환해 광역적 관리를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1970년대 아파트 공급 활성화를 목적으로 조성돼 재건축 가능 시기가 도래한 반포ㆍ서초ㆍ여의도 아파트지구는 서울의 대표적인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대거 분포한 곳이다. 지구별로 ▲반포 65개 단지 3만1945가구 ▲서초 22개 단지 1만3602가구 ▲여의도 6323가구 등의 규모로 조성돼 있다.

▲ 지난 19일 서울시 지구단위계획 대상에 포함된 오른쪽부터 반포ㆍ서초ㆍ여의도 아파트지구 현황. <제공=서울시>

시는 이곳들을 지구단위계획 대상에 올린데 대해 “아파트를 대량으로 공급하던 시기가 지나면서 ‘아파트지구(현 서울 시내 18개소)’가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으로 운영됨에 따라 이 지역에 대한 유지ㆍ관리도 현행 법령에 맞는 새 방식으로 바꾸기 위한 취지”라고 설명했다.

특히 ‘재건축 가이드라인’으로 현재 추진 중인 재건축사업들의 지연이 불가피할 것이란 우려에 대해 시는 기 추진 재건축 단지는 중단 없이 진행될 수 있도록 할 것이며, 지구단위계획 수립 시 주민 요구 사항 등 해당 단지의 의견을 충분히 반영할 수 있도록 자치구ㆍ도시계획정책자문단 등과의 논의를 통해 주민 설문조사, 공청회 등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김학진 서울시 도시계획국장은 “서울 대표 아파트 밀집지역인 반포ㆍ서초ㆍ여의도 아파트지구가 지구단위계획으로 관리되면 각 지구별 특성을 고려하고 공공성을 담보한 관리가 이뤄질 것이다. 용역은 이달 말 발주한다”며 “시민 생활패턴, 공간적 여건, 주변 지역과의 연계 등을 고려한 미래지향적 주거 단지 조성이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업계의 시선은 그다지 곱지만은 않다. 시의 18개 아파트지구 중 최초로 지구단위계획 대상에 오른 압구정 아파트지구(115만 ㎡)의 선례를 봤기 때문이다.

총 24개 단지 1만545가구 규모로 조성된 이곳은 이 중 9634가구가 재건축 연한(30년)을 넘기면서 사업 추진에 긍정적인 단지들이 잇따라 포착돼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었다. 하지만 시의 지구단위계획 대상지로 지정돼 시와 주민들 간의 입장차가 크게 벌어지면서 이 기대감은 기대에 그칠 것이란 분석이다.

압구정 아파트지구의 한 주민은 “지구단위계획에 따르면 한강변관리기본계획 등 기존 상위 계획의 기준이 그대로 유지된다. 주민들은 제한 완화를 요구하고 있는 상태에서 이 같은 계획이 바뀌지 않은 것 자체가 이해되지 않는다”며 “또 당장 속도를 내도 내년에 시행될 예정인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도를 피해갈 방법이 없어 재건축사업에 대한 기대가 꺼지고 있는 추세”라고 지적했다.

같은 맥락에서 또 다른 주민은 “재건축사업을 추진해도 지구단위계획 수립 시 사업이 느려질 수밖에 없다”면서 “인근 공인중개사사무소에 자문을 구해봤으나, 큰 틀에서의 관리는 허울 좋은 명분일 뿐 층수 제한 완화도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 우세해 박원순 시장에 대한 주민 원성이 자자한 형국이다. 급기야 차기 시장에 기대를 걸고 있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지구단위계획, 실패한 ‘뉴타운’ 쏙 빼닮아
사업 지연 등 문제점까지 ‘유사’… 우려, 현실 될까?

이처럼 서울시 ‘재건축 가이드라인’이 그어진 곳마다 혼란을 겪고 있는 가운데 업계 한쪽에서는 지구단위계획이 무너져 내리고 있는 ‘뉴타운’의 전철을 밟을 것이란 가능성이 제기돼 우려감을 키우고 있다.

15년 전 시가 도심의 고질적 문제에 대한 해결책으로 내놓았던 ‘뉴타운사업’은 무리한 사업 확대 등으로 그에 따른 부작용이 심화되면서 업계의 골칫거리로 귀결된 지 오래다. 주요 뉴타운사업이 추진된 서울시와 경기도에선 탈출구를 마련하기 위해 주력했으나, 여전히 서울 217여 개, 경기 70여 개의 뉴타운 구역이 해제되지 않은 상태다.

이같이 도시재정비업계에서 사라지지 않는 과제로 남은 뉴타운사업은 공교롭게도 지구단위계획과 닮은 점이 상당한 것으로 파악됐다.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하나로 묶인 점 ▲기반시설 등 종합적으로 조화롭게 개발하기 위한 광역 범위 사업 취지 ▲추진 시 이해관계ㆍ장기간의 인허가 과정 등으로 인한 사업 지연 및 중단 문제 등이 이에 해당한다.

지구단위계획과 같이 대규모로 추진 중인 이른바 ‘강북 압구정’, 한남뉴타운은 15년가량 답보상태에 머물렀다. 인근 한 공인중개사사무소 관계자는 “한남뉴타운은 시장이 침체되고 시세가 높아 문의가 줄어든 영향도 있으나, 전체 가구수가 1만5000여 가구, 한남3구역만 해도 4100여 가구에 달하는 만큼 장기간의 인허가 과정 등으로 사업 속도를 내기 어렵기 때문에 진척이 더뎠던 것”이라고 귀띔했다.

▲ 약 15년간 답보 상태에 머물렀던 한남뉴타운 일대. <사진=유준상 기자>

이번 지구단위계획 대상지로 뽑힌 여의도 아파트지구 역시 같은 이유로 ‘사업 지연’의 표적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게 업계 일각의 중론이다. 이들은 일정 수준 이상 사업이 진행된 구역이 다수인 반포, 서초와는 달리 여의도는 대규모 아파트 단지들이 많은 뿐더러 사업에 갓 입문한 초기 단지들이 몰려있기 때문에 크게 영향을 받을 것으로 예상했다.

한 도시재정비업계 전문가는 “이미 재건축사업이 어느 정도 진행된 단지나 시 도시계획위원회 심의를 받은 단지들은 이번 지구단위계획 수립에 큰 영향을 받지 않을 것이다. 이에 서초구의 단지들은 상대적으로 충격이 덜할 것으로 본다. 그러나 반포의 경우에는 각 단지별로 사업이 진행된 곳과 초기 단계인 곳(신반포4ㆍ7ㆍ12ㆍ16ㆍ19차 등)이 반으로 나눠져 있어 일부 단지의 사업 속도에는 제동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면서 “가장 충격이 큰 것은 최근 부동산신탁 방식 도입으로 사업 추진에 열을 올리던 여의도 아파트지구다. 이곳에는 안전진단, 추진위구성승인 등 초기 단계에 있는 11개 사업지가 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이 전문가는 이어 “지구단위계획 수립 이후 사업 지연, 주민 간 갈등, 서울시와의 입장차 등의 문제가 깊어진다면 현재 업계 및 주민들이 우려하고 있는 뉴타운사업과 같은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짚어냈다.

주민들 “역시나 서울시… 반쪽짜리 정책 지겨워”
업계, 적절한 인센티브 등 지구단위계획 ‘재정비’ 필요

업계 전반에서 서울시 지구단위계획에 대해 부정적인 전망으로 힘이 실리자 주민들은 ‘이럴 줄 알았다’는 반응을 드러냈다.

지구단위계획 대상지인 여의도 아파트지구의 한 주민은 “사업 초기 단계에 진입하며 의지를 불태웠으나 서울시의 이번 조치를 접하곤 모든 동력을 상실했다”며 “주민 의견을 들어준다고 고지했으나, 그동안의 서울시 태도로 봤을 때 추후 개선은커녕 반영할 리가 만무해 무기한 사업 연기 목소리도 나오고 있는 모양새”라고 꼬집었다.

실제로 안전진단 준비, 건축심의에 나서는 아파트 단지들은 시의 조치에 따라 사업 지연 및 중단이 불가피하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연구 용역 절차가 마무리되기까지 최소 1년 반가량의 시간이 걸려 그만큼 사업이 늦춰질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여의도 아파트지구의 경우 강남 압구정 아파트지구와 달리 최고 층수 ‘35층 제한’에 걸리지 않아 다른 방향으로 선회할 가능성이 남아있다.

또 다른 한쪽에선 서초와 반포 아파트지구의 다수 주요 재건축 단지들이 사업 절차를 마무리 지은 상황에서 시가 이제 와서 지구단위계획을 수립하는 것은 ‘반쪽짜리 계획’이란 주장도 나온다.

여의도 아파트지구의 한 주민은 “시의 지구단위계획 대상인 서초와 반포의 경우 적용을 받는 단지가 적은 반면 여의도 재건축 사업지엔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고 있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지구단위계획 대상 아파트지구에 적용되는 영향이 한쪽으로만 치우쳐지기 때문에 형평성에 어긋난다”며 “최종적으로 시의 지구단위계획 목적인 아파트지구 전체의 ‘조화로운 계획’이 아닌 일부만 영향을 받는 ‘반쪽짜리 계획’이다. 이를 지휘하는 박원순 시장에게 언제까지 ‘아집’만 내세울 것인지 묻고 싶다”고 지탄했다.

이처럼 시장의 반발이 커지는 가운데 2002년 이명박 전 서울시장 시절 지역 균형 발전을 모토로 추진된 뉴타운사업이 ‘무리한 사업 확대(오세훈 전 서울시장)→부동산 경기 침체→뉴타운ㆍ재개발 등 정비사업 출구전략(박원순 시장)’의 과정을 거쳐 결국 파행을 빚었듯, 이번 지구단위계획이 같은 방향으로 가지 않기 위해서는 시의 선제 조치가 필요하다는 게 다수 업계 전문가들의 주문이다.

한국주택문화연구원 노우창 기획1실장은 “종합적으로 시의 지구단위계획은 명분은 좋지만 허점이 많다. 사업 속도, 사업성, 주민의견 등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조치다. 게다가 주민들과 도시계획위원회 간 입장차가 쉽사리 좁혀지지 않을 것으로 보여 사실상 해당 지구들은 최소 1년 반 이상 ‘임시 휴업’ 상태로 남겨질 것”이라면서 “이에 사업을 긍정적으로 검토하던 해당 지구의 주민들에게는 지구단위계획이 하나의 ‘악재’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시는 지구단위계획 수립 전 단계에서 주민의견을 적극 반영하고, 사업 지연 등 피해 사업장에 적절한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등의 재정비가 필요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민수진 기자  vkdnejekdl@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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