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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유경제_기자수첩] 안중근 의사와 발렌타인데이를 함께 기념하는 법

[아유경제=고상우 기자] 최근 2월 14일을 ‘발렌타인데이’가 아니라 ‘안중근 의사 사형선고일’로 기념하자는 목소리가 높다. 그러나 엄밀히 따지면 이 주장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

안중근 의사에게 사형 판결을 내린 주체는 일본 법원이다. 따라서 일제에 반대하는 한국인의 입장에서 볼 때, 일본 법원이 선고한 사형선고일을 추모한다는 것은 일본제국의 사법체계를 긍정하는 셈이 된다. 

무엇보다 안 의사 본인이 일본제국을 부정하던 인물임을 감안할 때 이런 주장은 자가당착이다. 독립운동의 관점에서 안 의사를 기념해야 한다면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10월 26일, 또는 안 의사가 순국한 3월 26일을 기념하는 것이 옳다.

이러한 배경에도 ‘2월 14일을 발렌타인데이가 아닌 안 의사 기념일로 삼아야 한다’는 주장이 때때로 제기되는 이유는 왜일까.

‘발렌타인데이’라는 기념일이 지나치게 상업적이고 소비적인 면모를 지니게 된 것에 대한 반감이 작용했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또는 ‘서양 명절을 굳이 우리나라 사람이 챙겨야 하느냐’는 문화적 거부감도 들 수 있다.

이는 수용하는 사람의 입장에 따라서는 일리가 있는 이유다. 그러나 이는 ‘발렌타인데이가 한국에서 소비되는 양상’에 대한 비판 근거가 될 수는 있어도, 안 의사를 기념하자는 근거가 될 수는 없다. 

그럼에도 ‘안중근 의사의 사형선고일을 기념하자’고 주장한다면 역사적 맥락도 따져보지 않은 채 타인에게 엄숙함을 강요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사실 발렌타인데이와 안중근 의사의 정신은 대립되는 것이 아니다. 안중근 의사는 ‘토마스’라는 세례명을 지닌 당대의 유명한 천주교인이기도 했다. 그는 외부 세계와의 접촉이 드물었던 20세기 초 조선에서 서양 문물과 사상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서북 지방의 지식인이었다. 최근 “안 의사가 뤼순 감옥에서 순국 후 기독교 묘지에 매장됐다”는 러시아 신문의 기록이 보도되기도 했다.

안 의사가 2월 14일마다 연인과 초콜렛을 나눴을 가능성은 낮지만, 기독교 명절을 ‘외국의 것’이라는 이유만으로 무조건 배척하지도 않았으리라는 뜻이다. 그는 포용적이고 열린 사고를 갖춘 평화주의자였다.

기독교인 안중근 의사도, 발렌타인데이도 결국은 사랑과 평화를 추구했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지닌다. 더군다나 연인을 위한 마땅한 전통 기념일이 없는 상황이라면, 외국의 전통을 우리 식으로 수용해 서로의 마음을 주고받는 일을 그리 나쁘게만 볼 것만은 아니다. 이를 안중근 의사 역시 크게 노여워하지는 않을 것 같다.

고상우 기자  gotengj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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