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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유경제_기자수첩] 집값 상승이 바꿔 놓은 삶의 풍경

[아유경제=고상우 기자] ‘그녀의 재산은 십 수 년 전 돌아가신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파리의 아파트 한 채가 전부다. 유명 영화배우를 꿈꿨지만 좀처럼 기회를 잡지 못하고 시간만 흐른 채, 이제는 지루한 철학자의 강의록을 녹음하거나 연극센터 강좌에 나가는 것으로 근근이 생계를 이어갈 뿐이다. 치솟은 아파트 가격에 매각을 생각해보기도 했지만, 이는 그녀에게 파리에 거주할 권리를 완전히 박탈당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결국 관리비를 지불하기도 빠듯한 하우스 푸어로 기약 없는 생활을 연명한다’

프랑스 작가 미셸 우엘벡의 신작 소설 ‘세로토닌’에 나오는 한 인물의 이야기다. 최근 대한민국의 부동산시장의 상황이 이와 자꾸만 겹쳐 보이는 것이 우연은 아닐 것이다.

영화배우를 꿈꾸는 프랑스인에게 파리가 갖는 의미가 크듯, 기회를 갖고자 하는 한국인들에게 서울시가 갖는 의미도 각별하다. 유망한 기업과 일자리는 수도권에 몰려 있고, 성공을 위한 인적 네트워크는 강남권과 신도시를 중심으로 형성돼 있다.

그러나 수도권에 거주하는 것만으로도 경제적 부담은 무겁게만 다가온다. 충분한 보증금은 기본이고 매달 지불해야 하는 월세를 감당할 수 있는 이만이 이 메트로폴리스의 주거 권리를 갖는다. 즉 ‘기회를 잡기 위해선, 이미 기회를 잡았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무엇보다 치솟는 집값 상승은 노동이 갖는 의미를 완전히 변화시킨다. 근로를 통해 벌어들이는 돈이 매달 오르는 부동산에 비해 턱없이 적은 오늘날, 이미 많은 사람들이 온종일 부동산 시세표만을 바라본다. 하루 8시간 이상 매일같이 일을 붙잡고 있을 이유를 잃어버린 것이다.

일과 땅값 사이의 역설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은 소규모 자영업자다. 가게가 번창해 매출은 늘었는데, 건물주는 상가에 높은 가치를 매겨 임대료를 높인다. 결국 일이 잘 되더라도 손에 쥐는 돈은 오히려 적어지고, 심지어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해 쫓겨나게 되는 아이러니가 벌어진다. 이는 일을 할 동기, 즉 근로유인을 잃어버리는 결과를 낳으며 궁극적으로 사회 전체의 손해로 이어진다.

이제 노동은 근면, 정직과 같은 전통적 가치와는 무관해지는 듯하다. 오히려 부동산 투자에 무심한 채 우직하게 출퇴근만 하는 사람은 ‘시류를 못 읽는 어리석은 자’가 되고 만다. 일이 의미를 상실하고 ‘자가 보유’가 삶의 많은 부분을 결정하는 지금 ‘노동의 종말’이 다가온 건 아닐까.

게다가 집값 상승은 이미 전 세계적인 현상이 되고 있다. 위에서 예를 든 프랑스 파리를 비롯해 미국 서부 도시들, 영국 런던, 중국 상하이, 홍콩과 싱가포르 등 경제 중심권을 이루는 도시들은 점차 높은 진입장벽을 형성하고 있다. 이 같은 목록에 서울시가 그 이름을 올렸다.

부동산 가격의 상승곡선이 올라가고 수도권과 주변부의 격차는 점점 커지는 가운데, 자본이 이쪽에서 저쪽으로 쏠릴 때마다 거대한 힘이 세계 곳곳의 삶을 휘젓고 있다. 이 같은 큰 흐름을 개개인이 버텨내기는 역부족이다. 

각자의 삶을 단단히 뿌리내릴 수 있도록 중심을 잡아줄 뭔가가 필요해 보인다. 그것은 제도일 수도 있고 경제 주체간의 큰 합의일 수도 있고 사회 공동의 가치관 모색일 수도 있다. 하지만 아직은 그 어느 것도 확실해 보이지 않는다.

“한 사람이 직업을 가지면 그 직업이 그 사람이 된다”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영화 ‘택시 드라이버’에 나오는 말이다. 하지만 이제는 이렇게 바꿔야만 할 것 같다. “한 사람이 아파트를 가지면 그 아파트가 그 사람이 된다”고.

고상우 기자  gotengj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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