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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유경제_기자수첩] 조정래, 근대문학의 종언을 알리다

[아유경제=고상우 기자] 작가 조정래가 최근 ‘민족 반역자 처단’이라는 거대담론을 제시했다. 지난 12일 “토착왜구라고 부르는, 일본에 유학을 갔다 오면 무조건 다 친일파가 돼 버립니다. 민족 반역자가 됩니다”라고 말하고부터다. 이러한 모습은 근대문학의 시대가 완전히 저문 공허한 풍경을 보여준다.

해당 발언에 내용ㆍ표현상의 논란이 일자 조 작가는 지난 14일 “토착왜구로 그 대상을 한정하고 제한을 했는데 가장 핵심적인 중요한 주어부(토착왜구)를 빼버리고 일본에 유학 갔다 오면 전부 친일파 된다는 식으로 왜곡해, 오해가 생기는 일이 벌어졌다”고 설명했다.

‘토착왜구라는 단어로 주어부를 한정시켰으니 문제가 될 것이 없다’는 조 작가의 항변은 의미심장하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한국 땅에 토착왜구가 ‘이미’ 있고, 그들이 일본에 유학을 갔다 오면 무조건 다 친일파가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조 작가가 ‘가장 핵심적인 중요한 주어부’라고 설명한, 이른바 ‘토착왜구’는 누구일까. 이에 대해 조 작가는 지난 14일 “지금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반일 종족주의’의 저자들”이라고 특정했다. 그렇다면 이 저자들은 왜 ‘민족 반역자’라는 무서운 비난을 받아야 하는 걸까.

‘반일 종족주의’의 첫 장은 조 작가의 대하소설 ‘아리랑’에서 묘사한 장면에 대해 역사적 의문을 제기하면서 시작한다. 일본 경찰의 조선인 즉결 총살이나 일본군의 대량 학살은 허구라고 주장하며, 여기에는 역사적 근거가 없다고 논증한다. 이와 함께 기존 국사학계에서 견지해오던 일제의 식량ㆍ토지 수탈설을 비판한다. 조 작가는 이런 주장을 하는 이들은 모두 토착왜구이며 민족 반역자라고 단정하는 것이다.

조 작가는 역사적으로 연구해야 할 주제에 대해 자신과 견해가 다른 주장을 했다는 이유로 사법적 처단을 해야 한다고 몰아붙인다. 조 작가의 주장에는 학문의 자유가 없고 민족 지상주의라는 단일 원칙만 있다. 조 작가의 인식 체계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민족 문제에 있어서는 모두 조정래가 옳고 ‘반일 종족주의’가 틀리다. 왜냐하면 그들은 토착왜구이기 때문이다”

이는 공교롭게도 과거 조 작가의 작품 ‘태백산맥’이 반공주의에 의해 고초를 겪던 상황과 매우 닮아 있다. 군사정권과 극우파가 자신에게 붙이던 ‘빨갱이’ 딱지를, 이제는 조 작가가 자신의 반대편에게 ‘토착왜구’라는 이름으로 바꿔 붙이고 있다. 

조 작가의 이같은 일방주의는 근대문학이 그 수명을 다한 문화계의 황량한 풍경을 여실히 보여준다. 개화기에서 시작해 식민지와 해방기, 분단과 산업화ㆍ민주화 시기에 이르기까지 지난 100년이 넘는 시기동안 근대문학은 공동체의 방향을 이끄는 역할을 했다. 국가, 민족, 이념과 같은 거대담론을 통해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바를 제시해 왔다. 

하지만 21세기 들어 문학은 이러한 정치ㆍ사회적 영향력을 상실해갔다. 독서 대중들은 세상이 나가야 할 곳을 더 이상 문학에서 찾지 않고, 문학계 역시 이를 충분히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이른바 근대문학의 종언이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날 근대문학의 상징과도 같은 조 작가의 최근 발언은, 근대문학이 시대를 이끌기는커녕 작금의 시대조차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현 상황을 여실히 보여준다. 역사적 사실 여부를 논할 문제에 대해 문학계 원로는 민족 감정을 앞세운 채 반대측을 ‘민족 반역자’로 단정하고 법적 단죄를 공언한다. 문화 지체를 떠올리는 슬픈 풍경이다. 문학가가 질문을 가로막는 지금 이 시대에, 문학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고상우 기자  gotengj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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