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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유경제_기자수첩] 미얀마의 호소, 한국의 응답

[아유경제=고상우 기자] 6월 항쟁을 그린 영화 ‘1987’에는 무소불위 권력의 대공수사처장을 상대로 일개 검사가 대드는 장면이 나온다.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덮으려는 처장 앞에서 그가 꺼내든 것은 다름 아닌 미국 시사 잡지 ‘뉴스위크’다. 한국의 인권 탄압 상황을 외신 기자에게 알릴 경우 88올림픽을 앞둔 현 정부에도 문제가 생기지 않겠냐며 압박을 가한다. 국제 여론을 등에 업은 검사의 패기에 처장은 한 발 물러선다.

법조인과 부검의, 기자와 재야 인사, 종교계까지 수많은 인물들이 함께 빚어낸 민주화 투쟁의 극적인 과정을 이 영화는 잘 표현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군사정권에 맞설 수 있었던 가장 강력한 힘 중 하나를 꼽자면 결국 ‘뉴스위크’다. 냉전 시기 한국은 서방의 지원을 받는 반공의 보루로 있었지만, 국제사회는 개인의 인권을 유린하는 수준의 국가권력마저 허용하지는 않았다. 한국이 민주화의 결실을 이룬 데에는 이 같은 개방적인 국제 언론환경이 있었다.

이로부터 긴 세월이 지난 오늘날 미얀마에서 군사 쿠데타가 일어났다. 아웅산 수치를 중심으로 한 민주 정부가 들어선 지 5년 만에 미얀마는 다시 군부가 집권했다. 미얀마에도 ‘뉴스위크’의 힘은 작동한다. 미국을 위시한 서구 자유주의 국가들은 미얀마 군부를 규탄하며 경제 제재를 가하고 있다. 유엔 인권이사회도 미얀마 군부가 일으킨 쿠데타를 규탄하는 결의안을 채택했다.

물론 쿠데타 세력 역시 이 같은 상황을 모르지 않는다. 이들 곁에는 전통적인 협력관계를 유지해온 또 다른 패권국 중국이 있다. 중국은 러시아와 함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성명에 반대했으며, 쿠데타 규탄에도 미온적 반응을 보이고 있다.

중국 외교부는 자신들이 쿠데타를 지원한다는 연계설을 적극 부정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이 일대 일로 사업과 남중국해 진출 등으로 미얀마와 핵심 이익을 공유한다는 점에서 이 같은 의혹은 쉽게 떨치기 힘들다. 중국이 쿠데타를 지원하지는 않더라도 방조하는 상황 속에서, 미얀마 쿠데타는 어느덧 미중 패권경쟁의 장이 된 셈이다.

시민들을 향해 군대가 무차별 발포를 가하는 미얀마의 유혈사태는 매일같이 SNS와 외신을 통해 실시간 전달되고 있다. 인권유린의 참상을 국제사회에 알리는 이 모습은 군부독재의 현실을 외국에 알리던 1980년대 한국의 호소와 닮아 있다.

이제는 한국이 이러한 호소에 적극적으로 응답할 때인가. 당위적으로는 마땅히 그래야 할 것이다. 그렇지만 이는 어쩌면 미중 대립의 한복판에 한국이 자진해서 들어선다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다. 한국인들은 중국과의 관계에서 경제ㆍ외교적 피해를 입을 위험을 감수하고라도, 미얀마의 민주화를 지지할 준비가 되어있는가. 한국이 민주주의를 꽃피우기까지 세계 여러 나라로부터 받은 여러 도움들을, 지금 어떻게 나눌 수 있을까.

고상우 기자  gotengj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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