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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처분인가 후 분양 계약 절차 미진행 시 ‘신의칙’ 위반 여부
▲ 김래현 법무법인 현 수석변호사(도시정비사업팀장)/ 아유경제 편집인

1. 문제의 소재

재개발ㆍ재건축 조합은 관리처분인가를 득하고도 구역 내 거주자 이주 문제, 이주 관련 사업비 조달 문제 등으로 인해서 바로 조합원 분양 계약 절차를 진행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조합원 분양 계약이라는 용어는 의외로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이하 도시정비법)」에는 전혀 존재하지 않는 용어임에도 국토교통부가 고시한 표준 정관에 포함돼 일선 대다수 조합에서도 정관으로 관리처분인가 후 조합원 분양 계약 체결 절차를 예정하고 있고, 이 단계에서 기존에 분양신청한 대상 조합원이라고 하더라도 분양 계약 체결 절차에 응하지 않을 경우 현금청산 절차를 진행하게끔 돼있다.

근데 과거같이 부동산 가격 대세 상승기에는 위와 같은 분양 계약 체결 절차가 진행된다고 해도 이탈자가 거의 없었는데 최근에는 기존에 개략적인 분담금만 통보 받고 분양신청을 했다가 나중에 관리처분단계에서 개별 분담금 등을 통보받고서는 여러 이유로 분양권을 포기하고 청산받기를 원하는 소유자들이 종종 나오고 있다. 이때 이들은 청산금 지급을 주장하면서 신탁등기에도 응하지 않고 이주도 거부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이 경우 조합은 어쩔 수 없이 도시정비법 및 조합 정관에 의거 이들을 대상으로 신탁등기 소송 또는 명도 소송을 할 수밖에 없는데 이 경우 이들은 조합이 관리처분인가를 받고도 상당 기간 분양 계약 체결 절차를 진행하지 않아서 본인들로 하여금 청산자가 될 기회를 박탈하는 것이 ‘신의칙 위반’ 내지 ‘권리 남용’이라는 항변을 했고, 서울 소재 지방법원 모 합의부에서 위 신의칙 항변을 받아들여 원고(조합)의 청구를 기각시키면서 위 하급심 판결은 속칭 비상대책위원회 사이에서 가장 신성시하고 전가의 보도처럼 떠받드는 판결문으로 관련 유사 사건에서 수없이 원용되곤 했다.

필자는 위 하급심 사건을 원고 조합 입장에서 직접 진행하기도 했던 변호사로서 위 하급심 판결이 신의칙에 대한 판단을 부당하다고 봐 상소하기도 했지만 상소 과정에서 사업 지연으로 인한 사업비 증가를 견디지 못하고 일선 조합에서는 사실상 협의 매수 또는 조정으로 끝내왔던 것이 현실인데 최근 이에 대해 하급심 판결의 잘못을 지적하는 명시적 대법원 판례가 본인이 자문을 하고 있는 재개발 현장에서 선고된바, 이를 칼럼에서 소개하고자 한다.

2. 대법원의 판단

가. 분양신청을 철회한 자라 함은 분양신청 기간 내에 분양 신청을 했으나 그 기간이 종료하기 전에 이를 철회함으로써 ‘분양신청을 하지 아니한 자’와 마찬가지로 관리처분계획의 수립 과정에서 현금청산 대상자가 된 사람을 의미할 뿐, 분양신청을 한 후 분양신청 기간이 종료한 다음 임의로 분양신청을 철회하는 사람까지 이에 해당된다고 볼 수는 없다.

나. 도시정비법 등 관련 법령 및 원고의 정관에 ‘조합은 관리처분인가 이후 어느 일정한 기간 이내에 반드시 분양 계약 체결 기간을 정하여야 한다’는 취지의 규정도 없다. 오히려 원고 정관 제44조제5항은 조합원으로 하여금 ‘조합이 정한 기간 내’에 분양 계약을 체결하도록 규정해 분양 계약 체결 시기는 조합이 재량으로 정할 수 있게 하고 있다. 그렇다면 원고는 조합원들의 다양한 이해관계, 해당 정비사업에 소요될 것으로 예상되는 사업비용, 조합원 현금청산 대상자ㆍ세입자 등의 이주 정도, 관리처분계획의 변경 가능성 등 제반 사정을 고려해 사업시행기간 중 분양 계약 체결 기간을 적절한 시기로 정할 수 있는 권한을 보유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다. 사업시행자가 취득하는 토지의 보상액은 변동성이 적은 공시지가를 기준으로 해 토지의 위치ㆍ형상ㆍ환경ㆍ이용 상황 등에 따라 적정하게 가감된 금액으로 결정되므로, 조합이 현금청산 대상자들에게 지급할 보상액을 줄이기 위해 고의적으로 분양 계약 체결 절차를 지연시킬 가능성은 높지 않다. 

라. 위 정관 조항은 조합이 조합원들에게 분양 계약 체결을 요구하는데도 그 분양 계약 체결 의무에 위반해 분양 계약을 체결하지 아니한 조합원을 현금청산 대상자로 한다는 의미로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고, 조합이 사업 진행 상 여러 가지 사정으로 조합원들에게 분양 계약 체결 자체를 요구하지 아니한 경우에는 그러한 사정만으로 조합원들이 당연히 현금청산 대상자가 된다고 볼 것은 아니다(대법원 2012년 5월 9일 선고ㆍ2010다71141 판결 등 참조).

3. 검토

가. 신의칙에 위배된다는 이유로 법률관계 당사자 간 상대방에 대한 권리 행사를 부정하기 위해서는, 상대방에게 신의를 공여했거나 객관적으로 봐 상대방이 신의를 가지는 것이 정당하고, 그러한 상대방의 신의에 반해 권리를 행사하는 것이 정의 관념에 비춰 용인될 수 없는 정도의 상태에 이르러야 한다는 법리에 비춰 볼 때, 조합이 관리처분인가 후 이주 정도, 관리처분계획 변경 가능성 등을 고려해 상당기간 분양 계약 체결 절차를 진행하지 않았다고 해서 그러한 것이 원고인 조합이 분양 계약 체결 절차를 진행하거나 추가적인 분양신청 기회를 부여하지 아니하고 피고들에게 부동산의 인도를 구하는 것이 정의 관념에 비춰 도저히 용인될 수 없는 정도라고 볼 수 없다는 점에서 위 대법원 판결은 지극히 타당하다고 할 것이며,

나. 결과적으로 한 하급심 재판부의 잘못된 법리적용으로 인해서 적지 않은 수의 조합이 명도 소송에서 줄지어 패소 판결을 받아서 그로 인한 사업 지연과 손해가 적지 않았던바, 이제라도 최고 법원의 법률 판단으로 인해서 이와 같은 사태가 바로 잡혀졌음에 안도감을 느낀다.

김래현 변호사  koreaareyou@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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