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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유경제_기자수첩] ‘깡’ 신드롬, 완벽하지 않아도 된다는 위안

[아유경제=고상우 기자] 21세기 초에 등장한 가수 비(정지훈)는 완벽한 사람이었다. 매력적인 외모를 갖춘 한 청년이 뛰어난 노래와 퍼포먼스로 가요계를 평정했다. 연기와 예능에서도 큰 두각을 드러냈으며 해외 진출에도 성공했고 자기관리에도 철저했다. 물론 ‘월드스타’라는 닉네임은 지금 관점에서 보면 다소 과한 허명이었지만, 당시 비는 만능 엔터테이너의 이미지를 구축한 독보적인 인물이었다.

그러던 그가 최근 10년간 하락세를 겪었다. 발표한 곡들은 그저 그런 반응이었고 출연한 영화나 드라마도 별 반향을 얻지 못했다. 배우 김태희를 배우자로 맞이하며 톱스타 간의 결혼이라는 화제를 일으킨 것도 잠시, 발표하는 작품마다 ‘예전만 못하다’는 평이 주를 이뤘다.

2018년 개봉한 영화 ‘자전차왕 엄복동’은 비의 하락에 화룡점정을 찍었다. 제작비 약 150억 원을 투입한 기대작이었음에도 전국 관객 17만 명이라는 초라한 성적을 거둔 이 영화는, 낮은 작품성과 더불어 과도한 ‘애국 마케팅’이라는 비판을 받으며 VOD로 직행했다. 주연으로 출연한 비 역시 수많은 조롱과 패러디의 대상에 오르는 신세를 면치 못했다. 

그런 그가 ‘깡’이라는 노래로 재기의 발판을 마련했다. ‘깡’은 2017년 내놓은 곡으로, 히트에 실패한 그의 ‘흑역사’ 중 하나다. ‘멋있다’고 말하기는 어려운 안무와 난해한 구성의 뮤직비디오로 인해 발표 당시 대중들의 반응 역시 미적지근했다. 그러나 3년 뒤인 지금 이 곡은 ‘역주행’에 성공했다. 유튜브 뮤직비디오 조회수 1000만 뷰를 앞두며 폭발적인 유행을 구가하고 있는 ‘깡’의 성공 비결은 무엇일까.

인터넷 공간에서 ‘깡’이 놀림거리의 한 요소로 떠오르게 되면서, 네티즌들은 하나둘씩 ‘깡’의 안무를 따라하며 즐겼다. ‘톱스타’라는 컨셉을 고수하려는 이가 잔뜩 힘을 주고 춤을 추면 우스운 광경이지만, 소위 ‘망한 노래’라고 접근하면 편하게 즐길 수 있게 된다.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놀이 공간이 만들어졌다는 점은 ‘깡’이 폭넓게 사랑받을 수 있게 된 요인이다.

여기에 당사자인 가수 비도 이러한 ‘문화적 유행’에 기꺼운 마음으로 동참했다. 지난 16일 방영된 MBC 예능 ‘놀면 뭐하니?’에 출연한 비는 부끄러워할 법한 자신의 과거를 유머를 곁들이며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다. 대중들은 그의 넉살에 다시 한번 열광했다.

자신에 대한 네티즌의 희화화를 웃으면서 함께 즐길 때 조롱이 찬사로 바뀐 것이다. 만약 비가 해당 영상을 보며 정색을 하거나 불편한 태도로 일관했다면 대중들도 더는 ‘깡’을 소비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로써 탑가수와 헐리우드 스타로 군림하던 지난날의 ‘완벽한’ 비는 가고, 대중들에게 한결 더 친근한 모습을 선보인 ‘깡’의 주인공 비가 다가왔다. ‘언제나 성공 가도만 달리는 완전한 사람은 없다’는 평범한 진실을 공유한 것이다. 망가짐을 두려워하지 않는 비는 더욱 매력적인 엔터테이너로 다시 태어났다. 

그리고 이 같은 ‘깡’ 신드롬을 통해, 대중들은 ‘완벽하지 않아도 된다’는 위안을 얻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깡’을 소비하는 이들은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얻고 있는 듯하다. “사람이 늘 완벽할 수만은 없다. 저 빛나는 스타일지라도”.

내가 놀려도 넉살 좋게 받아주는 속 넓은 사람은 그 존재만으로도 편안하다. 그리고 그런 상대를 보면서, 나 역시 자신의 실패와 부족함을 탓하지 않고 인간적인 모습의 하나로 볼 여지가 생긴다. 

완벽한 사람은 없다. 누구나 조금씩은 틀린다. 스스로를 책망하고 자신에게 화살을 돌리는 대신, 때론 실수하고 비틀거리는 주위를 둘러볼 때 다시 도전할 힘이 솟아오른다. ‘깡’의 실패, 그리고 역주행이라는 반전의 이야기가 반가운 이유다.

고상우 기자  gotengj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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